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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어 한 마디 못한 겐조가 프랑스 패션계를 사로잡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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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utinereview 2020. 10. 5.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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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디자이너 다카다 겐조, 코로나19 합병증 사망

 

 

겐조맨투맨, 겐조클러치백, 겐조향수, 겐조티셔츠, 겐조키즈, 겐조스니커즈... 겐조 브랜드로 나오는 다양한 제품들이다.

 

'패션의 나라' 프랑스에서 성공한 일본 출신 디자이너 다카다 겐조(高田賢三)가 81살 나이로 4 세상을 떠났다.

 

겐조는 파리 패션계에 성공적으로 진출한 최초의 동양인 디자이너다. 이방인 스스로가 발신하는 매력적인 에스닉 룩(Ethnic Look)으로 1970년대 파리 패션계에 이름을 날렸다.

 

겐조는 1939년 일본 효고(兵庫)현 히메지(姬路)에서 7남매 중 다섯째로 태어났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패션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겐조 아버지는 3번째 아들로 태어난 그에게 현명한 셋째 아들이라는 뜻의 겐조(賢三)’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겐조는 어린 시절 또래 소년들과 어울리기보다는 누나들의 패션 잡지를 보는 것을 즐겼다. 

 

패션 잡지 속 외국 모델처럼 눈이 큰 예쁜 여자아이의 그림을 그리고, 잡지 부록으로 온 패턴으로 옷을 만들면서 패션 본고장 유럽을 동경했다.

 

누나 결혼식 준비를 위해 함께 간 기모노 매장에서 꽃, , 나무, , , 강 등 아름다운 자연이 그려진 실크 원단의 아름다움에 사로잡혔다.

 

그는 대학을 중퇴하고 도쿄로 건너가 문화복장학원(Bunka Fashion College)에 진학했다. 그곳의 첫번째 남자 신입생이었다.

 

졸업한 뒤 기성복 디자이너로 활동했는데, 살던 도쿄 아파트가 철거하게 되어 거액의 보상금을 받았다.

 

이 보상금으로 겐조는  동경하던 유럽으로 떠났다. 편도 이등석 티켓을 구입하고 프랑스 마르세유(Marseille)로 가는 배에 올랐다.

 

1965 파리에 도착했다. 프랑스 어 한 마디 할 줄 모르는 26살의 왜소한 일본 청년은 디자이너 부티크와 잡지사를 찾아가 자신의 디자인을 선보이며 파리 패션계의 바닥부터 커리어를 쌓아 나갔다.

 

1968년 프랑스 5월 혁명을 지켜 본 겐조는 자유와 평화를 노래하는 반체제 성향의 젊은이들을 만족시킬 수 없음을 느꼈다. 

 

기존 엘리트주의와 전통에 저항적인 패션을 선보인 것이다.

 

 

겐조는 1970 정글 그림을 가득 그려놓고, 동양적인 요소가 믹스된 새로온 작품을 선보였다.

 

당시 자금이 충분치 않았던 겐조는 새 원단을 구입할 수 없었다. 일본에서 사온 유카타 값싼 원단으로 옷을 만들었다.

 

그러나 일본 직물로 만든 헐렁한 셔츠가 1970 6 엘르(Elle) 잡지의 표지를 장식하면서 그는 파리 패션계에 새로운 스타로 등장하였다. 정글 잽은 곧바로 젊고 패셔너블한 젊은이들의 아지트로 부상하였다.

 

그가 어린 시절에 보았던 게이샤들의 화려한 자수와 프린트의 기모노처럼 한 벌 의상에 체크 무늬와 꽃무늬, 스트라이프 문양을 섞어서 제작한 옷은 파리 패션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겐조는 파리 거리에서 젊은이들과 그들의 패션을 관찰해 그들의 욕구를 파악하고, 일본 고유의 전통의상에서 출발했지만 동시에 너무 일본스럽지 않은, 캐주얼하면서도 세계적으로 보편성을 갖는 옷으로 탈바꿈시켰다.

 

겐조를 1970년대 파리 패션을 대표하는 주요 디자이너로 자리매김하게 한 것은 그가 선보인 넉넉한 오버사이즈의 의복, ‘빅 룩(Big Look)’이었다.

 

자유를 평생 가장 중요한 테마로 생각한 겐조는 기교적이고 몸에 딱 맞추던 날씬한 실루엣 대신 넉넉한 원단으로 직선 재단한 옷들을 여러 겹 겹쳐 입어 부피감을 주는 빅 룩을 선보였다.

 

일본식 문화와 서양식 문화를 접목한 작품들은 파리지앵 마음으로 스며들었고 1976년에는 자신의 이름을 딴 브랜드를 선보였다.

 

여성 컬렉션으로 디자이너 생활을 시작한 겐조는 1983년 남성 컬렉션을 선보였고 1988년 향수를 출시했다. 겐조 향수병에 그려진 꽃은 겐조를 상징하는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다.

 

 

1994년 여름 파리를 대표하는 다리 '퐁뇌프'를 꽃과 담쟁이덩굴로 수놓은 것도 겐조 작품이었다.

 

겐조는 1993년 루이뷔통모에헤네시(LVMH)에 자신의 브랜드를 매각한다.

 

 

1999년엔 패션계에서 떠나겠다고 발표하면서 30년 가까이 바쳤던 디자이너로서의 삶을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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